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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宗岩大统庙访问后记

경기도 가평군 하면 대보리 대보산


입추가 지난지 일주일이 되었는데도 더위는 물러갈 기색이 전혀 없다. 오늘은 모처럼 야외에서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다. 장소는 여동생이 미리부터 동해안의 모처로 정해 놓았으나 오가는 도로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것을 미리 예감하고 가평군 하면 상판리에 있는 청암산장으로 변경하여 각자 목적지에서 모이기로 하였다.

운전을 하면서 지나는 길에 들려 볼만한 곳은 없을까.? 생각하다가 조종암을 들리기로 하였다. 청평검문소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현리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옆으로 흐르는 큰 하천은 일명 청평천이라 부르는 조종천이다. 가평군 하면 상판리(명지산. 연인산. 운악산)계곡에서 발원해 동남쪽으로 흘러 북한강으로 합류한다. 막바지 휴가철 연휴라 그런지 자동차는 밀려서 밀려서 어느만치 왔는지 가늠하기 조차 어렵다. 조종천길은 울창한 숲과 높은 절벽들이 이어지며 그 아래로는 아직 맑고 깨끗한 내(川)가 천천히 때로는 빠르게 흐르고 있다.

조선시대 이맹균(李孟均)이 이 고장을 지나며 감탄해서 쓴 글이 ‘동국여지승람’에 실려 있다.


"일찍이 포천 가는 길에 굴파(屈坡)를 넘어

안장을 내리고 잠깐 조종에서 쉬었다.

어지러운 산 깊은 골을 뚫고 가는데,

한 가락 길이 꼬불꼬불 굽이도 많다.

비록 말을 꾸짖으며 걷고 건너기 어려워도,

이 고을에 이르니 마음이 이미 시원하다.

가닥진 여러 봉우리 온 고을을 감쌓는데,

천 가지 모습만 가지 형상이 다 기절(奇絶)하다....."


이 절경을 따라 흐르는 조종천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맑은 내 중의 하나로 꼽힌다. 밀려서 어느정도 왔을까.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새로 놓은 다리를 건너면  조종천은 갑자기 활처럼 휘어지며 잘 닦여진 2차선 도로가 나온다. 500여m쯤 서행하다 보니 그 왼쪽 길 언덕위에 조종암(朝宗巖)이 있다. 오늘 내가 찾은 곳이 바로 이 대보리에 위치한 대보단 조종암과 요동백 충무공 김응하장군을 제사하는 대통묘(大統廟)이다.


완만한 언덕을 오르니 커다란 홍살문이 보이고 높이 이어진 돌 계단이 고즈넉하다. 옆으로는 관리사 인듯한 현대식 건물이 보이지만 농사일로 밭에 나갔는지 불러도 대답이 없다.. 고개숙여 잠시 묵례를 올리고 계단을 오르니 조종제라 쓴 커다란 현판이 걸려있는 재실이다. 조종재 벽에 걸려있는 각종 중건기 중수기등 현판을 둘러보고 중간 계단을 오르니 공북문(拱北門)이 보인다. 잠깐동안 공주 공산성의 공북루(拱北樓)를 떠올린다. 무슨 연관이 있지나 않을까? 왜냐하면 공산성의 공북루 기문을 우암 송시열선생이 지었고 이곳 조종암의 ‘사무사(思無邪)’ ‘일모도원 지통재심(日暮途遠, 至痛在心)’이라 쓴 암각문도 송시열의 필체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공북문을 지나 대통묘에 이르니 아쁠사 문이 굳게 잠겨있다. 대통묘(大統廟)라 쓴 현판만 올려다 볼뿐. 이리저리 둘러 보았지만 내부에 모셔져 있는 충무공의 위패는 친견을 하지못한채 아쉬운 발 걸음을 돌려 가족들이 기다리는 청암산장으로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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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암 해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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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암 비석

조종암(기념물 제28호 시대:조선 숙종)

조종암(朝宗巖)은 가평군 하면 대보리산176-1에 소재한 바위 위에 문자를 조각하고 비석을 세우고 단(壇)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면서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서울 남한산성에서 40여일간을 청국오랑캐와 대항하며 싸우던 인조대왕(仁祖大王)과 신하들은 전세가 크게 불리하게 되자 그래도 끝까지 죽음으로 싸워야 된다고 하는 청음 김상헌(金尙憲)선생의 주장과 죄없는 백성을 더이상 흉악한 오랑캐의 말발굽 아래 짖밟히게할 수 없으니 차라리 청나라에 항복하자는 최명길(崔鳴吉)의 주장이 맞서게 되었다. 이와 같은 와중에서 인조대왕은 한때의 분함을 참고 나라를 이어 나가겠다는 결의로 항복하게 되었는데 저 흉악 무도한 오랑캐들은 만고에 없는 굴욕적 항복 조건을 요구하였으니 두 왕자와 척화파 대신의 자제 등을 인질로 무고한 남녀 약100만명을 포로로 잡아가고, 또 삼학사(三學士)를 비롯하여 여러 사람을 죽였으니 이는 우리 민족의 긍지에 먹칠을 하고, 그 정기를 꺾어 버리려는 악랄한 폭행이었던 것이다.

효종대왕(孝宗大王)이 심양에서 9년동안 인질에서 풀려 돌아올 때 심양에 포로로 잡혀와 있는 명나라 구의사(九義士)를 함께 데리고 서울로 왔으니 이는 장차 북쪽 청나라 오랑캐를 칠 때 안내를 맡은 향도관으로써 한민족(漢民族)의 협조를 받고자 함이었다.

효종이 임금이 되어 우암 송시열(宋時烈) 선생과 이완(浣) 대장을 주축으로 북벌의 큰 사업을 추진하던 중 불행하게도 효종이 일찍 죽게 되니 우암 송시열선생은 초야에 물러나 살게 되었지만 효종의 큰 사업인 북벌계획이 계승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숙종10년인 서기1684년에 가평군 하면 대보리 대보산 절벽 바위 위에 심양 옥중에서 청음 김상헌선생이 구하여 온 의종(毅宗)황제 어필인 ‘사무사(思無邪: 생각에 사특함이 없음)’ 3자를 본뜨고, 효종이 대한에게 내려 준 ‘일모도원 지통재심(日暮途遠, 至痛在心: 해는 저물고 갈 길은 먼데 지극한 아픔이 마음속에 있네)’을 써서 그 당시 가평군수이던 이제두(李齊杜)에게 부탁하여 보내니 이 군수가 허격(許格) 백해명 (白海明) 등 여러 선비들과 힘을 합하여 이를 선조대왕 어필인 만절필동 재조번방(萬折必東, 再造藩邦: 일만번 꺾여도 반듯이 동역으로 흐르거니 명나라 군대가 왜적을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다시 찾아 주었네)과 낭선군이 쓴 조종암(朝宗岩: 임금을 뵈이는 바위)등을 함께 조각하고,의종황제가 순국한 날인 3월 19일에 임진왜란 당시 우리를 도와주었던 신종황제의 은혜에 보답하여 제사를 지내면서부터 유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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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24;&#53685;&#47896;(大統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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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神点评(8)

天行健 2012-10-15 12:49:21 显示全部楼层
悲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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灵静8906 楼主 2012-10-15 13:19:13 显示全部楼层
天行健 发表于 2012-10-15 12:49
悲呀

众人还是没能理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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瑜瑾-憾 2012-10-15 19:54:32 显示全部楼层
我们还任重而道远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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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言轻 2012-10-15 23:28:48 显示全部楼层
望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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换我一生 2012-10-17 18:57:25 显示全部楼层
队形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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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衣墨图 2012-10-18 09:34:32 显示全部楼层
慢慢来吧。不要着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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夏言轻 2012-10-18 19:15:05 显示全部楼层
。。。。。。。。。。。。。望天!好忧伤啊啊啊啊啊啊!【没有队形了,恩,请自由发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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羽觞醉月 2012-10-18 20:56:28 显示全部楼层
悲乎哉 一个枝足竟然就掩盖了我们主体  到时候 韩国人都看出了这是汉服 咱们汉族人居然没看出来 这是多么讽刺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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